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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3대 대첩 (살수 대첩, 귀주 대첩, 한산도 대첩)

by 뷰22 2022. 5. 16.

대첩(大捷)이란 크게 이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 많은 승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3대 대첩으로 꼽히는 것이 있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 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을 우리나라 3대 대첩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3대 대첩 (살수 대첩, 귀주 대첩, 한산도 대첩)

 

 

살수 대첩

 

612년 (영양왕 23년) 수나라가 113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습니다. 수나라 군대는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지만 고구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함락하지 못하고 시간만 끄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나라의 수양제는 평양성을 바로 공격시키기 위해 30만 별동대를 따로 조직하여 보냈습니다.

당시 별동대는 식량과 군보급품 등으로 운반해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워 몰래 버리는 일이 발생했으며 군의 지휘부 내부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을지문덕 장문은 거짓으로 퇴각하는 척하며 수나라 별동대를 유인하며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거짓 항복 문서를 받은 수나라 우중문 장군은 퇴각을 결정하였습니다. 수나라 별동대가 살수(오늘날의 청천강)에 이르러 병력이 강을 건널 때 고구려군이 공격을 하였습니다. 이때 살아남은 수나라의 별동대는 겨우 2,7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은 실패로 끝났고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마침내 수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귀주 대첩

 

거란(요나라)은 고려를 3번 침공하였습니다. 

1차 전쟁은 993년 고려 성종 당시 서희가 외교적 담판으로 강동6주를 얻으며 종전되었습니다.  

2차 전쟁은 2010년 고려 현종 때 벌어졌습니다. 거란은 회군 조건으로 강동 5주의 반환과 고려 국왕이 거란에 방문하여 예의를 갖출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3차 전쟁은 1018년에 벌어졌으며 소배압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침략하였습니다. 거란군은 당시 최강의 군대로 불렸으며 정예병인 기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고려는 상원수 강감찬이 지휘하는 20만 8000여 명의 군사로 맞서 싸웠습니다.

고려군은 홍화진 옆 삼교천에 쇠가죽으로 막았던 둑을 터트려 적의 기병대를 혼란시킨 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고려군에게 연달아 패배한 거란군은 퇴각하게 되는데 압록강으로 향하던 중 귀주에서 고려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귀주평야에서 고려군과 거란군 30만 명이 대규모 전투를 벌였고 거란군은 전멸당해서 살아 돌아간 군사는 겨우 수천 명뿐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고려는 대승을 거두었고 거란은 더 이상 침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순신-산
한산도 대첩 이순신 장군

 

 

한산도 대첩

 

1592년 (선조 25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의 판옥선으로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후 학인진 전술로 공격하였습니다.

학익진이란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의 진법입니다. 일렬로 형태를 이루다가 적이 공격해오면 중앙의 부대는 뒤로 물러나고 좌우의 부대는 앞으로 나와 반원 형태로 적을 포위하는 공격 방법입니다.

조선 수군은 도망가는 일본 수군을 공격하여 배 47척을 바다에 침몰시키고 12척의 배를 빼앗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 전투로 이순신 장군은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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