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4번째 왕이었던 세종대왕의 아버지인 이방원은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며 형인 2대 정종의 뒤를 이어 조선 3대 왕이 되었습니다.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 왕자의 난 가계도 하여가 정몽주 단심가
이방원
태종 이방원은 1367년(고려 공민왕 16년)에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나 세종 4년인 1422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이며 동복형제으로는 진안대군(방우), 영안대군(방과, 정종), 익안대군(방의), 회안대군(방간), 덕안대군(방연)이 있으며 이복형제는 신덕왕후 강씨 소생인 무안대군(방번), 의안대군(방석)이 있습니다.
문무를 겸비한 방원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왕조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역성혁명을 반대한 정몽주와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을 제거하였습니다. 2번의 왕자의 난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고 왕위에 오른 후 군사제도를 바꾸고 사병을 없애 왕권강화에 힘을 썼습니다.
왕자의 난
1차 (무인정사, 방원의 난, 정도전의 난)
조선이 세워진 후 왕의 후계자 자리와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세력 간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조선 초기 정도전은 실권을 장악하고 왕권은 약화시키고 유신 중심의 집권체제를 강화하려 했습니다.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웠던 이방원은 권력에서 밀려났으며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막내 방석을 세자로 택했습니다.
이에 큰 불만을 품게 되었던 이방원은 1398년에 정도전이 사병을 해체시키려 하자 정도전과 그 세력들을 제거하고 세자 방석과 방번을 죽였습니다.
2차 (방간의 난)
이방원에게 추대된 영안대군 방과는 태조 이성계의 뒤를 이어 2대 왕 정종이 되었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이방원에게 있었습니다.
1400년에 정종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회안대군 방간과 박포가 이방원을 없애려 왕자의 난을 일으켰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그해 11월 정종은 2년 만에 왕위를 이방원에게 양위하고 이방원은 마침내 3대 왕 태종이 되었습니다.
가계도
하여가 / 단심가
하여가
하여가(何如歌)는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그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시조입니다.
< 하여가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
단심가(丹心歌)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변으로 정몽주가 지은 시로 고려에 대한 변치 않는 충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충절을 버리지 않은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 단심가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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